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

섹슈얼리티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여성 신체를 안전지대에 놓으려 하기보다,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여성의 힘으로 전유하는 시도가 <러브 세트>에서 펼쳐진다. 그렇게 등장하는 배두나의 신체는 압도적이고, 그가 틀어쥐고 있는 시선의 힘은 강인하다. 이지은의 얼굴에는 그가 배우로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은밀한 욕망이 떠오른다. 이경미는 덧붙인다. “그렇게 아름다운데, 왜 가려야 하죠?”

이경미 인터뷰 하면서 <러브 세트>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줘서 좋았는데, 나는 마치 <아워 바디>에서 자영이 부장이랑 섹스를 하기 때문에 뭐 '페미니즘 면에서 틀렸다'(나도 이게 뭔 말인지 모름, 대충 그렇게들 말했더랬음)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었던 것만큼이나, 이 영화를 두고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눈으로 대상화한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황당했다. <미쓰 홍당무>에서 이종혁이 별 역할 아닌 것처럼 이 영화에선 이지은의 아빠가 아무 역할도 안 하지. 그 사람은 먼지만큼의 존재감도 없고 코트를 가득 채우는 건 배두나의 몸, 이지은의 시선, 땀만큼이나 뚝뚝 떨어지는 욕망 같은 것들인데 여기서 남성의 시선은 어디 있나? 관객이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없거든. 이경미가 안 찍었으면 이렇게 노골적이고 우수울 만큼 섹스만을 외치는 레즈비언 욕망 숏들이 나올 것 같냐고. 시간이 더 흐르면 이건 더이상 과감한 시도가 아니게 되겠지만 그래서 이게 역사가 될 거라고!

아 사실 메인 이야기는 <보건교사 안은영>에 대한 거였다. <안은영>을 보면서 딱히 나쁜 건 아닌데 뭔가 묘하게 걸린다고 생각했던 지점을 이 인터뷰 읽으면서 깨달았다.

왜냐면,

“(<잘돼가? 무엇이든>과 <미쓰 홍당무>에 대해) 두 영화는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만나서 좋아지는 이야기다. 나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. 그런데 또 ‘남자랑 여자가 만나서 안정감을 느낀다, 무언가가 완성된다’는 유의 이야기에 크게 설득된 적이 없다. 그러다 보니 쓰게 된 이야기였다.”

일단 이 부분이 이경미 영화의 본질이다. ‘이경미에게 사람은 여자’ 라는 말이 정확하듯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고 구제하는데 거기에 남자가 없다 = 감독 본인이 그런 이야기에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. 그래서 이경미의 세계에는 <안은영>의 홍인표 같은 남자가 없었다. 반면 정세랑의 세계는 홍인표 같은 남자들로 가득 차 있다. 무해하고,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. 아니 무해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? 그래서 이경미를 생각하고 드라마 <안은영>을 보면 좀 이상했었다. <안은영>이 그 두 세계를 성공적으로 봉합했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, 음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.

갑자기 너무 이경미 얘기만 했나? 어쩔 수 없다. 사랑하니까.


이 책은 2019년-2020년에 개봉한 영화를 찍은 13명의 여성 감독들을 데려온 손희정 평론가의 인터뷰다. 헤아려 보았는데 이 중에서 4편을 아직 보지 못했다. 얼른 봐야지.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최근에 본 것은 박지완의 <내가 죽던 날>인데 그것도 무척 좋아서 늦게 본 것을 후회했다.

“이 작품을 기획하던 무렵, 영화 속에서 고난을 겪는 여자들이 모두 죽었다. <화차>도 그랬고 <미씽:사라진 여자>도 그랬다. 저렇게까지 살려고 노력하는데, 살려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. 계속 그 뒷모습만 보고 쫓아갔는데, 어깨를 잡고 돌려서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었는데, 그 기회를 안 준다고 느꼈다. 그래서 생각했다. 나는 구하는 이야기를 해야지.” 영화는 세계의 폭력에 눈감지 않으면서도, 탈출구 없는 절망만을 늘어놓지는 않는다. 대신 영화는 말한다. “당신이 스스로 당신을 구해야 해. 그런데 말이야, 잘 들어봐. 그때 당신 옆에는 내가 있을 거야.”

이 인터뷰를 보고, 영화 중반부까지 내내 세진이 죽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무색해졌다. 감독은 여자를 죽이는 이야기에 신물이 나 있었고 그 애를 죽일 생각이 없었었는데. 구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만든 영환데.

어쨌든 그래서 좋았다.